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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부고 졸업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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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이종일

직업

졸업회수 5회

졸업연도 1979년

남기는 글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 76-79년의 기억들

 

봄, 1학년
1976년 3월의 봄은 따스했다. 입학식을 치르자마자 우리는 설레는 해방감으로 자유를 만끽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다른 학교를 배정받은 친구들이 자기 학교를 교정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으로 부를 때, 적어도 우리학교는 캠퍼스라고 으스댔다.

인하대학교와 인하공전이 한 울타리 안, 그것도 지척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 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다. 약간의 근거만 있어도 일방적 주장은 시간이 지나면 진실로 자리 잡는다. 적어도 우리는 그렇게 생각했다. 비록 우리 학교가 달랑 5층짜리 건물 하나였지만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경사진 잔디밭은 점심시간마다 청춘의 해방구였고, 심지어 까다로운 교감선생님조차 출입을 막지 않으셨다. 지역의 다른 고등학교와는 차별되게 주어진 어줍잖은 자유가 우리 1학년의 마음에 가득 찼다.

 

운동장 조회(1970년대 후반)


어쩌란 말인가! 채 한 학기가 지나기도 전에 우리 자체가 캠퍼스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을. 중딩을 갓 면한 떠꺼머리 10대의 눈에는 머리를 기를 수 있고, 등교 때에도 생활지도 자체가 없고, 교문이 4개 이상이며, 오가며 들이마시는 여대생들의 체취는 커다란 행복감을 주었다. 4월이 지나면서 일부는 점심시간에 인경호를 탐색하고 대학교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는 대담함을 보였다. 가끔 장충체육관으로 배구응원을 가기도 했으나 이미 자유를 만끽하던 우리는 서울 구경이 주는 새로움에 곧 시들해졌다.

봄은 따사로웠으나 짧았다. 자유를 만끽하고, 친구와의 대화를 즐길 수 있던 입학 후 1년은 너무도 짧았다. ‘관계 대명사’ 뒤를 잘라서 주어와 동사를 찾으라던 영어선생님의 외침만큼이나 단발마 같은 1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용마루 예술제 전시(1970년대 후반)

 

여름, 2학년
2학년에 올라가자 1반과 7반이 생겼다. 그 당시에 정확한 의미는 몰랐지만 우리는 수정체처럼 난생 처음 세포 분열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운명이 상당부문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문과와 이과, 우반과 열반의 구분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듯한 질투나 시기가 우리에게는 아직 없었다.
같은 친구와 같은 선생님들을 매일 보면서 강제적 분리이든 규칙이든 간에 사회가 만들고 학교가 준수하는 것일 뿐 우리는 여전히 즐거웠다. 당시 감정의 분출구였던 시화전(詩畵展)이 그 정점에 있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고, 그리고 노래를 불렀다. 그림을 그리던 친구 중의 하나는 지금 어엿한 화가가 되었고, 시를 썼던 어떤 녀석은 지금 논문을 쓰느라 고생을 하고 있다. 이상한 인형을 흔들며 노래해 여학생들로부터 가장 많은 환호를 받던 그 카수가 ‘나는 가수다’에 나왔다는 소식은 아직 없다. 서울 여학생들마저 초대해 인하대학캠퍼스에서 열었던 시화전은 ‘인하부고 2년생의 인하캠퍼스 정복 작전’에 다름 아니었다.
선생님들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밤늦게까지 여학생들과 함께 어색함과 소란스러움으로 인경호를 가득 채웠다. 우리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물론 다가올 겨울의 혹독함을 알지 못했지만 화장실에 다녀오는 친구들의 몸에서 ‘구름과자 냄새’가 짙어진 것도 이 무렵이었던 것 같다. 2학년 1학기 때만 해도 몇몇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Crazy dog’에 물렸다는 소문이 있었으나 상처가 남았다는 후일담은 없다. 당시에는 심각했으나 지금은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는다. 아무리 비가 많이 내려도 지루한 여름 장마는 쉽게 잊혀지고, 무더위만이 기억에 남는 법이다. 시간은 기억을 퇴색시키고 본질만을 간직하게 마련이다. 특히, 폭풍 같이 순수할 때의 기억은 더욱 그렇다. 지금 생각해 보면, 2학년 때의 기억은 공부도 자유도 아닌, 목적 없는 열정이었다. 무엇을 열심히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잘 생각도 나지 않는다. 다만, 각자의 취향대로 그저 무언가에 미친 듯이 몰두해 있었다.


겨울, 3학년
우리가 겪은 1978년을 한 단어로 정의하자면 ‘침묵’이다. 3학년 교실에는 봄이 절대 오지 않을 것처럼 찬바람이 불어 적막이 감돌았고, 수업시간의 선생님 목소리는 낮을수록 더욱 잘 들렸다. 쉬는 시간조차 책을 보거나 자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어서 적막강산에 다름없었다. 대부분 도시락을 두 개 정도 싸가지고 다녔고, 어떤 친구는 3개를 가지고 다녔다. 도시락에 밥만 가지고 와서 학교 뒤에서 국물만 사서 먹거나 친구들로부터 반찬을 모아 풍성하게 먹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불과 몇 개월 전의 점심시간이 주던 생동감은 이미 대학입시라는 중압감에 눌려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오히려 도시락을 수시로 해치우고 수학 문제의 해법을 친구에게 묻는 녀석들이 많아졌다. 오전수업만 하고 쑥스럽게 빠져나가는 취업반의 장발들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하교 시간조차 이미 그 의미를 잃었다. 몸보신 한답시고 자취하는 친구 집에 모여 달걀 한 줄을 끓는 물에 왕창 넣었다가 터져버린 달걀을 두 개도 못 먹고 결국 다 버렸다. 그만큼 불안했고, 그만큼 어설펐고 절
박한 시절이었다. 그러나 교사 앞 잔디밭에 앉아 영어단어장 위로 쏟아지는 햇살을 즐길 수 있었던 것은 여전히 달콤한 축복이었다.
그 무렵 우리는 이미 닳아 해진 성문종합영어, 해법수학, 최종점검 등을 부여잡고, 교실안에 유령처럼 앉아 있었다. 공부와 시간을 위해 스포츠형이나 속칭 ‘이부가리’로 머리를 깎아 반항 아닌 반항하는 친구들도 생겨났다. 심지어 눈썹을 밀어서 강한 의지를 표현하는 녀석이 주목 받기도 했다. 선생님들이 더 이상 멀거나 무섭지 않았고, 오히려 친구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때가 이 무렵이었다. 물론 몇몇은 담배에 이어 술과 같이 또 다른 금단의 열매를 찾아 나서기도 했다. ‘학익동 경험’을 자랑스럽게 그리고 ‘너무 구체적’으로 서술하는 친구도 있었으나 진정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겨울 내내 내린 눈으로 소리조차 얼어버린 산속의 겨울처럼 고요함이 교실 안에 첩첩이, 그리고 우리 마음에 수북하게 쌓인 그런 시절이었다.

 

도서반(1970년대 전반)
고2 수학여행(1976)

가을, 졸업 후
우리가 치열한 고등학교 시절을 보낼 무렵, 그리스 사제 비슷한 복장을 한 루소스(Demis Roussos)라는 가수의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이라는 노래가 우리의 심정을 깊게 파고들었다. 가사의 내용을 아직도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무언가 자연의 법칙을 애절하게 말해 주는듯한 짙은 목소리만으로도 우리를 사로잡았다. 어쩌면 1976년에 입학해 따스한 1학년, 화려한 2학년을 거쳐, 겨울 같은 3학년을 지낸 후 각자의 길로 나선 우리의 입장을 잘 대변하는 노래였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후 우리가 걸었던 길은 너무나 다양하고 복잡해 한마디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각자 대학으로, 사회로 나갔고, 그 후에는 나름대로 다양한 직장을 구해서 나름의 업으로 삼았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전국 각지도 모자라 세계 여러 나라에 나가 사는 친구들도 생겼다. 모두 다른 장소에서 다양한 삶을 살고 있지만 단 한 가지, 우리가 봄, 여름 그리고 겨울을 같이 보낸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우리는 여전히 인하부고 5회 졸업생이라는 명찰을 심장 한 켠에 판막이처럼 달고 산다. 몸뚱이를 혼자 감당하는 심장처럼 ‘인하부고 5회’라는 DNA는 이미 30년 이상을 우리 몸의 일부로 지냈고, 오늘도 화려한 복제를, 그리고 가을의 열매를 꿈꾼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가을에 서 있다. 가을꽃은 여름 꽃보다 화려하다. 향기와 자태를 뽐낼 시간이 상대적으로 짧기 때문이다.


‘봄, 여름, 겨울 그리고 가을은 모든 것 안에 있습니다.
(Spring, summer, winter and fall are in everything)’라는 루소스의 노래가사처럼 우리는 가장 순수했던 시간을 치열하게 불살랐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수확할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우리가 한 공간에서 봄, 여름, 겨울을 같이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운명적으로 공유한 봄, 여름, 겨울에 이어 이제 인생의 가을을 자발적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뿐이다.
 

<인하 50년사 발췌>

졸업생 이미지

성명 최태웅

직업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졸업회수 21회

졸업연도 1995년

주요경력
학력 - 한양대학교
-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
- 인하대학교 사범대학 부속중학교
경력 2015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감독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 대한민국 남자배구 국가대표 선수
2010 ~ 2015 천안 현대캐피탈 스카이워커스 선수
2008 제1회 AVC컵 남자배구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2008 월드리그 배구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2007 월드리그 배구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2003 아시아 챌린지컵 배구대회 대한민국 국가대표 선수
1999 ~ 2010 대전 삼성화재 블루팡스 선수
수상내역 2019.4 도드람 2018-2019 V리그 시상식 남자부 감독상
2019.3 도드람 2018-2019 V리그 챔피언결정전 우승
2017.4 NH농협 2016-2017 V리그 시상식 남자부 감독상
2017.3 2016-2017 NH농협 V-리그 남자부 포스트시즌 우승
2016.3 V리그 우승
2014 V-리그 10주년 역대 베스트7 세터 부문
2013 NH농협 2012-2013 V리그 세트 10,000개 기준기록상
2012.4 NH농협 V리그 특별수훈상
2009 NH농협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MVP
2009 NH농협 V리그 정규리그 세터상
2008 NH농협 V리그 정규리그 남자부 세터상
2006 KT&G V리그 정규리그 세터상
2003 프로배구 V투어 세터상
2002 슈퍼리그 세터상
2001 V코리아 세미프로리그 세터상

졸업생 이미지

성명 김웅수

직업 인천 남부교육지원청 교육장

졸업회수 1회

졸업연도 1974년

남기는 글

[골든타임즈] 인천남부교육지원청(교육장 김웅수)‘포토북 활용 우리 마을 그림책 만들기’ 직무연수를 실시했다. - 2021.06.09

[탑미디어] 인천남부교육청(교육장 김웅수) 위(Wee)센터는 ‘2021년 학업중단 예방을 위한 위기사례 수퍼비전’ - 2021.05.28

 

자랑스러운 모교 인하부고!
개교 50주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인하부고는 지난 50년간 ‘참되자’라는 교훈을 바탕으로
수많은 인재를 길러내어
우리나라 명문 사립고등학교로 우뚝 서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사제동행’의 열정으로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이바지한
인하부고 교직원과 동문 여러분께 경의를 표합니다.
참된 배움을 실천하며 지역사회와 함께 발전해 온 인하부고!
이제 새로운 100년의 역사로 도약하기 위한 출발선에 있습니다.
코로나 이후 대전환의 시대에
50년 전통의 축적된 힘으로 인천교육의 비전을 함께 실현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고, 역사를 주도하는
따스한 인재를 키워나가기를 기대합니다.
다시 한번 인하부고의 개교 50주년을 축하드리며,
동문과 학교 구성원 그리고 인하부고를 사랑하는 모든 분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인하 50년사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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